담담하게 열정적인 김이나의 작사법
김이나의 작사법은 노란색이다. 처음엔 노란색이 김이나 작가님의 아름다운 외모와 빛나는 작사 능력을 산뜻하게 표현하기 위한 장치라 생각했다. 다 읽고나서 다시 이 책을 바라보니 노란색이 의미하는 건 김이나 작사가님이 아니라 그의 작사스타일인 듯하다. 그는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다. 과하다는 느낌의 열정이 아닌 속이 꽉찬 단단한 느낌의 열정. 언뜻 차분해도 보인다. 자신을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일에 임하는 모습. 그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색이 아마 노란색 아니었을까?
김이나 작사가님을 처음 본 건 MBC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이다. 무지 잘나가는 작사가라는데 너무 예뻐서 깜짝 놀랐다. 예쁜데 마르기까지, 돈도 엄청 잘 버네, 부럽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던 어떤 출판 기획자는 나와는 좀 다르게 생각한 듯하다. 바로 저자. 이미 수많은 베스트셀러의 저자이지만 이제 또 다른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킬 저자.
이제 히트곡 이야기를 해보자. 내가 특히 좋아한 곡을 꼽아보자면 가인, 아이유, 써니힐의 곡이다. 가인의 '돌이킬 수 없는'은 가사와 딱 맞는 퍼포먼스에 완전 꽂혔었다. 아이유의 '나만 몰랐던 이야기'는 아이유가 주는 우울한 느낌이 좋았다. 써니힐의 '베짱이찬가'는 속시원한 가사와 신명나는 멜로디의 합작이다. 노래방에서 미친 베짱이에 빙의해서 신나게 불렀던 기억이 있다.
작사를 이해하는 핵심, 발음디자인과 상황 설정
특정 수준에 치우치지 않고 입문, 기초, 실습, 심화까지 폭넓게 아우르고 있는 이 책은 대중 가요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으로 책을 집어든 사람부터 작사법을 제대로 공부해보고자 하는 작사가 지망생, 그리고 (감히 예상해보건대) 현재 작사가로 활동 중인 분들까지 충분히 만족시킬 수작이 아닐까 싶다. 그중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발음디자인'과 '상황 설정'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이것들은 가사에 대한 내 시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해주었다.
'발음디자인'은 멜로디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발음을 찾는 작업이다.
특히 댄스곡은 발음디자인이 필수적이다. '멜로디는 신나는데 가사가……'가 아니라 그 멜로디가 신나게 들리는 이유에 가사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랩을 생각해보니 그 개념을 받아들이기 쉬웠는데,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의욕만 앞서 라임과 플로우를 무시한 채 가사를 써버리면 아무리 그 메시지가 좋아도 그 랩을 '듣고 느낄' 수 없다. 이 개념을 직접 확인하고나니 댄스곡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넓어진 느낌이었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듣고 자동으로 몸이 움직인다면, 그건 멜로디와 보컬의 힘만이 아니다. 그것들을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는 가사가 있기 때문이다.
'상황 설정'은 인물, 시간, 공간 등의 설정을 의미한다.
내가 사랑 노래 가사를 '거기서 거기'라고 느꼈던 건 이 부분을 간과한 생각이었다. 그건 마치 너도 태어나서 죽고, 나도 태어나서 죽으니 너와 나의 삶은 똑같다는 말이나 달므없다. (물론 '인생 특별할 것 없어, 다 똑같애.' 이런 말을 하기도 하지만! 디테일이 같은 삶을 절대 없으니…) 우리가 겪는 모든 '상황'은 사실 모두 '다르다'. 이 생각을 가지고 사랑 노래 가사를 잘 들여다보면 가사의 주인공의 성격도, 그가 겪은 사랑도 모두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그밖에도 '브릿지' 활용 예시, 'A&R' 인터뷰 등 흥미로운 부분이 참 많았다. 특히 예시가 풍부하니 책을 꼭 소장해서 보길 추천! 김이나의 작사법은 차근차근 읽고 실습해보며 두고두고 꺼내볼 책인 것 같다.
대중 가요 가사에 대한 편견을 깨주는 책, 가사에 대한 믿음을 얻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대중 가요 가사'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두 가지 편견의 조합이었다. 댄스곡은 신나기는 하지만, 가사는 왠지 영 볼품없단 생각. 그리고 사랑 노래 가사는 다 거기서 거기라 저런 가사는 왠지 나도 쓸 것 같다는 생각. 두 생각 모두 '왠지'라는 말을 넣은 건 댄스곡 가사가 왜 그런지 생각해본 적도, 사랑 노래 가사를 직접 써본 적도 없이 내린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매우 중시해서, 가사가 이상하거나 심지어 가사의 일부만 이상해도 잘 듣지 않았다. 한때는 그 정도가 심해서 가사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했는데, 노래를 듣는 건지 가사를 검사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집착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그런 태도는 '가사를 중시'한 게 아니라 '가사를 불신'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오히려 가사에 대한 집착을 조금 버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사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나 할까. 작사가는 '수많은' 생각으로 가사를 쓰고, 내가 노래를 '잘' 들을 수 있게 많은 장치들을 심어두었다. 그니까 좀 더 믿고 들어도 된다고!
김이나의 작사법에서는 작사법뿐만 아니라 김이나 작사가님의 인간적인 매력도 느낄 수 있었다. 벨소리 추천차트 만드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기뻐했지 '차트 만드는 일이나 하고 있네' 하는 생각 따위는 절대 하지 않았다는 그녀. 멋졌다. 작사가님의 말처럼 어떤 일을 하고 싶다면 그것과 관련된 무엇이든 하고 있어야 맞다! 그러니 작사가를 지망하는 사람이라면 일단 읽자. 작사에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는 사람도 일단 읽자. 그런 의미에서 북리뷰 추천곡은 그레이의 '하기나 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