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여 관여, 간여하다 관여하다, 헷갈리는 맞춤법 파헤치기 #이거슨오타가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전에 읽었던 '한시의 품격'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어요. 시마, 시흥이란 걸 처음 알게 된, 참 행복하게 읽었던 책이에요. 한시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강력 추천합니다!
그런데 웬걸? 이런 부분을 발견합니다. 저는 연필을 들어 엑스를 쳤어요.
"그런 탓인지 정두경은 과거시험 답안지를 채점하는 일에는 간여하지 않으려 했다." (17쪽)
음, 간여? '관여'일 텐데. 오타가 난 걸 거야. 간 대신 '관'이라는 글자를 쓰고 저는 별 생각 없이 넘어갑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간여 관여 중에서 관여만 사전에 있는 단어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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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런 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국가나 사회의 일에 간여하여 상벌을 마음대로 한다." (43-44쪽)
아, 뭔가 이상하다. 두 번이나 관여를 간여로 쓰는 오류가 날까? 간여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닐까? 간여 관여 모두 사전에 있는 말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궁금증을 안고 사전에 검색해봅니다.
앗! 있습니다. 오타가 아니었어요. '관계하여 참견함'이라네요. '관여'에는 꼭 참견의 의미가 들어 있지는 않은듯 한데, 조금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집에 있는 국어사전을 펼쳐봅니다. '간여' 뜻이 나와 있지는 않고, '☞관여'라고 되어 있네요. 뭐지? '관여'와 같은 것이라 봐도 무방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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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여 관여 ] 본격적으로 생각해봅시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간여 관여 각각 이렇게 나와있네요.
* 간여(干與): 관계하여 참견함.
* 관여(關與): 어떤 일에 관계하여 참여함.
음, 둘 다 '관계한다'는 뜻을 가지는데 간여는 간섭, 관여는 관계의 의미가 강하군요.
간섭을 한자로 干涉라 씁니다. 간여와 간섭 둘 다 干(방패/간여할 간)을 쓰고 있습니다.
관계를 한자로 關係라 씁니다. 관여와 관계 둘 다 關(빗장/관계할 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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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누리집 '묻고 답하기'에 '간여 관여 차이'를 물은 글에는 다음과 같은 답변이 달려 있습니다. (답변 상세보기)
안녕하십니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간여하다'를 '관계하여 참견하다'로, '관여하다'를 '어떤 일에 관계하여 참여하다'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여하다'와 '관여하다'는 그 의미가 유사하나 '그 사람의 감정에는 내가 간여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남의 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마시오.'에서 보이듯이 '관여하다'는 '간여하다'와 달리 '일'에 관련할 때 일반적으로 '관여하다'가 쓰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 점을 참고하셔서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전 이 설명이 확 와닿지는 않더라고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일'에 관련할 때 일반적으로 '관여하다'를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한시의 품격' 예시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고 '일'에 관련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오히려 더 헷갈리네요. 혹시 이 의미를 설명해주실 수 있는 분은 댓글로 설명 부탁드려요. 좀 더 일반적인 의미로 '관여하다'를 많이 쓴다는 건 조금 납득이 갑니다. 간여 관여 실은 차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혼란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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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예문을 보면 간여에는 '참견과 간섭'의 의미가, 관여에는 '참여와 관계됨'의 의미가 더 짙어보여요. 그래서인지 '간여'하면 왠지 그 일에 본래 관계된 사람이 기분 나빠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제 머릿속에는 '남에게 권한이 있는' 일인데 '관여'하는 것을 '간여'라고 한다고 입력했어요. 관여가 간여를 포함하는 좀 더 넓은 뜻을 가진 단어로 보여요.
군인들이 민간일 일에는 간여를 못 하게 돼서 헌병들도 다 물러가지 않았습니까?
이 문장에서 '간여' 대신 '관여'를 넣어도 의미가 바뀌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모반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폭군 네로는 세네카에게 자살을 명했다.
이 문장에서 '관여' 대신 '간여'를 넣으면 의미가 바뀝니다. 모반에 관계했다는 것과 모반에 간섭했다, 참견했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의미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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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제가 '한시의 품격'에서 발견한 '간여'가 들어간 문장의 앞뒤 문맥을 살펴보시면 좀 더 이해가 쉬우실 거예요. 글만 살포시 남기고 갑니다. 읽기 쉽게 문단을 제 임의로 좀 더 나눴습니다. 간여 관여 이제 느낌이 오시나요?
"어찌 감히 나를 꾸짖는단 말이냐?"
조선 중기의 인물로 호주(湖洲) 채유후(蔡裕後, 1599~1660)와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1597~1673)이라는 문인이 있다. 이들은 당대 최고의 시문가들이다. 한번은 두 사람이 함께 과거시험을 관장하는 일을 맡은 적이 있었다.
당시 채유후는 문형(文衡)을 쥐고 있었고, 정두경은 정언(正言) 벼슬에 있었다. 문형이란 한 시대의 문풍(文風)을 좌우하는 막중한 자리면서, 또한 청직(淸職)의 대표 직책인 대제학(大提學)을 일컫는 말이다. 정언은 사간원(司諫院)에 소속된 관원으로서, 왕의 잘잘못을 따지고 간언을 하는 직책이다.
얼핏 보기에도 과거시험은 대체로 문형을 쥐고 있는 채유후의 뜻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순리였을 것이다. 그런 탓인지 정두경은 과거시험 답안지를 채점하는 일에는 간여하지 않으려 했다. 다만 낙방으로 분류된 응시자들의 답안지를 들추어 보면서 그중에 어떤 것은 잘 썼노라면서 칭찬을 하곤 했다.
정두경의 행동은 명색이 문형을 쥐고 있는 채유후에게 대단히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품계에서도 정육품인 정언 벼슬은 정이품 대제학에 비하면 한참 차이가 나는 처지 아니던가. (후략)
- '조선 시인의 자존심, 조선 시인의 힘' <한시의 품격> 중에서
"시를 쓰는 힘의 원천"
시귀니 시마니 하는 용어를 쓰기는 해도, 이것을 지금의 말로 옮기면 아마도 '시힘'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시인 자신조차도 알 수 없는 힘을 굳이 표현하자면 이렇게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중략) 이규보의 시마론을 통해서 당시 사람들이 시마를 어떤 모습으로 그렸는지 간단히 살펴보자. 그는 「구시마문(驅詩魔文, 시마를 몰아내는 글)」에서 시마의 죄상을 이렇게 폭로한다.
① 세상과 사물을 현혹해 아름다움을 꾸미거나 평지풍파를 일으킨다.
② 신비를 염탐하고 천기를 누설한다. 이처럼 사물의 이치를 밝혀냄으로써 하늘의 미움을 받아 사람의 생활을 각박하게 한다.
③ 삼라만상을 보는 대로 형상화한다.
④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국가나 사회의 일에 간여하여 상벌을 마음대로 한다.
⑤ 사람의 형용을 초췌하게 하고 정신을 소모시킨다. (후략)
- '시 귀신이 돌아다니던 시대' <한시의 품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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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다 간여 관여를 보신 분들께서 글의 의미를 더 정확히 파악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올립니다. 저처럼 '간여와 관여의 차이'가 궁금하셨던 분들께는 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글이었으면 하고요. 저도 여기저기서 찾아보고 그 뜻을 생각해본 것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제 상상이 아닌 사전,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등의 자료를 토대로 글을 정리했습니다. 그래도 전문가가 아니기에 의아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글에서 오류를 발견하신 분이나 정확한 사실을 알고계신 분이 계시다면 지나치지 마시고 꼭 댓글로 말씀 부탁드립니다.
따뜻한 공감(♡)과 댓글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는 태니였습니다.